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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4부작 2편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2편)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는 머피에 법칙에 관한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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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4부작 1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머피의 법칙이 뭔지는 알면서도 막상 그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희귀한 연구 결과를 주로 싣는 핫에어 사이트에 "머피의 ...
[2003/09/25] 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4부작 1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머피의 법칙이 뭔지는 알면서도 막상 그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희귀한 연구 결과를 주로 싣는 핫에어 사이트에 "머피의 법칙의 유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는 머피라는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었고, 머피의 법칙은 로켓 슬레드에서 탄생했다는 내용을 머피의 법칙 탄생에 영감을 불러 일으킨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하고 생생하게 전합니다. 4부작으로 나뉜 기사 중 1부를 소개드립니다. 사진의 멋진 남자가 바로 실존인물 머피입니다.

제1부 : 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이 이야기는 몇 달 전 한 항공관련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나의 이웃에게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 글은 1950년대 유명했던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웃이 말했다. "저희 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거 같네요. 아버지가 에드워즈 기지 소속이셨거든요. 1940년도에 에드워즈 기지에서 로켓 슬레드 테스트를 하셨어요" 이웃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머피를 알고 계시답니다"

"머피요?" 나는 내가 아는 테스트 조종사 중 머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를 생각하며 물었다. 예거, 크로스필드, 암스트롱... 머피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피를 모르신단 말예요?" 그는 말했다. "그 유명한 머피의 법칙을 발명한 사람 말예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난 속으로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머피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담. 아버지가 머피를 아신다고? 물론 아시겠지. 머피는 상상속의 아일랜드 국민 영웅, 아니면 흑맥주를 즐겨 마시는 1700년대의 지식인이었다고 해도 그 말이 거짓임을 확인할 길이 없지 않는가. 나는 그냥 그러셨느냐고 얼버무리곤 화제를 바꿨다.



(1. 머피의 법칙이 탄생했던 에드워즈 공군기지. 두번째 줄 중앙에 짙은 색 옷을 입은 사람이 존 폴 스테입 대령. 그 오른쪽은 조지 니콜스다. 앞 줄 왼쪽이 데이비드 힐이다. 에드워드 머피는 이 사진 및 에드워즈 부대원들의 모습을 담은 다른 어떤 사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에드워즈 부대에 딱 이틀간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방 문턱에 놓은 책에 걸려 넘어질 뻔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책은 "머피의 법칙과 일들이 왜 잘못되는가에 관한 다른 이유"라는 제목의 얇은 책으로, 머피의 법칙과 실제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조지 니콜라스라는 이름의 엔지니어가 쓴 짤막한 머릿말이었다. 대충 자신이 1940년대 존 펄 스테입 대령과 에드워즈 기지에서 로켓 슬래드 테스트에 종사했고, 머피의 법칙은 이 테스트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책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 "머피의 법칙은 개발 엔지니어 캡틴 에드워드 머피 주니어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strain 게이지 브리지를 잘못 연결해 오작동하는 스트랩 변화기 때문에 낙담한 그는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말한다.


  •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잘못될 것이다' 브리지를 설치한 기술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그것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책의 내용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머피의 법칙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머피의 법칙은 사람들이 정한 법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림 2. 존 폴 스테입 대령을 유명하게 만든 사진. 물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 사진은 Gee Whiz에 단독 탑승한 스테입 대령의 용기와 G의 개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머피의 법칙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에드워드 머피 주니어가 현명함과 통찰력, 당당함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머피의 법칙을 발명한 사람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로도 알려진 스테입 대령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오락가락 했다. 에드워드 머피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가 스테입 대령의 슬레드 테스트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나는 진실을 캐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쩌면 아주 힘든 작업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머피의 법칙은 어쩌면 전설이 아닐까? 먼 옛날 한 군인이 로켓포를 차에 두고 내렸는데 로켓포가 산으로 발사되었다는 그런.... 이웃의 말은 이번에야말로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내게 주었다.

    로켓 슬레드

    데이비드 힐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테이블에 높은 수십개의 사진들이 눈에 띠었다.

    "이 사람이 스테입 대령이요." 데이비드 힐이 말한다. 사진속의 스테입 대령은 마르고 터프한 이미지일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약간 포동포동한 타입이었다. "이 사람은 조지 니콜라스요" 옆에 서 있는 흰 셔츠를 입은 키가 작달막한 남자를 가리키며 힐이 말한다. 그 오른쪽으로 아주 젊어 보이는 데이비드 힐이 눈부신 태양 아래 눈을 가늘게 뜨고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그가 머피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나는 머피의 사진을 갖고 있지 않소. 머피는 우리 부대에 딱 이틀만 머물렀거든."

    올 83세의 힐은 파킨슨병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엔지니어다운 면모가 엿보이고, 당시 일을 놀랄만큼 자세히 기억했다. 힐은 1947년 노스롭 항공기지에서 일하다 뮤로(나중에 에드워즈로 이름이 바뀜) 기지로 파견되어 MX981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MX981 프로젝트 장은 스테입 대령이었다. 힐에 의하면, 스테입 대령은 평범한 공군 대령이 아니라 의사이자 일류 연구원이었고 다소 낭만적인 기질도 있었다고 한다.

    MX981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충격의 한계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간단히 말해 공군측은 G 값을 알고 싶어했다. G는 항공기 추락시 조종사가 견뎌낼 수 있는 해수면에서의 중력의 한계를 말한다. 힐에 의하면 당시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중력의 한계는 18G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모든 군용기가 이 수치를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2차대전 기간 동안 발생한 몇몇 사고로 인해 그 수치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일었다. 만일 틀리다면 이것은 조종사의 목숨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였다.



    (그림 3. 당시 프로젝트 멤버였던 데이비드 힐의 사진. 2002년 7월 촬영)

    프로젝트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항공의료연구소는 노스롭과 계약을 맺었다. 노스롭은 계약에 따라 충격완화장치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것은 트랙이었소. 콘크리트 위에 놓인 반마일 정도 길이의 보통 철로 말이요." 데이비드 힐은 사진을 가리키며 말한다. "원래는 2차대전 기간동안 독일 V-1 로켓 발사용으로 만든 것이었소."

    엔지니어들은 트랙 한쪽 끝에 엔지니어들은 50 피트 길이의 공룡 이빨같이 생긴 수압 펌프 브레이크를 설치했다. "Gee Whiz"라는 별명이 붙은 슬레드가 이 트랙 위를 시속 200 마일 이상의 최고 속도로 돌진하면 수백만 파운드의 힘을 내면서 브레이크가 슬레드를 1초내에 멎게 했다. 그 심장이 멎는 듯한 순간에 발생하는 물리적 힘은 항공기가 추락할 때 발생하는 힘과 맞먹었다. 급감속 테스트는 로켓포를 이용해 슬레드를 가속하다 갑자기 정시시킬 때 슬레드에 탑승한 사람의 신체 상태를 측정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단, 사람이 타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오스카 에잇볼이라는 이름의 인형을 대신 탑승시켰다.

    스테프 대령은 부임 첫날 감속도의 효과를 몸소 체험한다며 자신이 몸소 슬레드를 타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힐을 비롯한 대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다." 힐은 말한다. "그 중 한 사람인 M.I.T,에서 나온 누군가가 만일 인간의 몸에 18G의 힘을 가하면 몸 속 모든 뼈가 으스러 진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며 만류했소."

    그러나 젊은 의사이기도 했던 스테입 대령은 테스트에 관해 나름대로의 이론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직속 상관들은 1천마일 밖에 멀리 떨어져 있다! 스테입 대령은 슬라이드 법칙과 물리학 및 인체에 관한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의 방식대로 계산을 했고 그 결과 18G가 한계라는 건 말도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테입 대령이 계산한 값은 18G의 2배 이상 되는 값이었다. 물론 그의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이 틀리다는 것을 몇 달 전 누군가가 증명했다. 벨 X-1 로켓 조종사였던 척 예거가 Gee Whiz 트랙과 같은 상공에서 음의 장벽을 깬 것이다. 예거는 전문가들의 예언과는 달리 인간 푸딩이 되지도, 벙어리가 되지도 않았다. "진정한 장벽은 창공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존재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이다.



    (그림 4. Gee Whiz에 탑승한 오스카 에잇볼 인형)

    오스카 인형 하차하고 존 폴 스테입 대령이 탑승하다

    스테입 대령은 독불장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이자 방법론자였다. 몇 달간 슬레드에 올라 테스트를 한 것은 오스카 에잇볼 인형이었다. 그 테스트 과정에서 몇 가지 취약점이 발견되고 수정되었다. 오스카 인형이 처음 슬레드에 올랐을 때는 주/비상 브레이크가 작동을 멈춰 Gee Whiz는 사막으로 발사되었고, 다른 테스트에서는 오스카는 고무 가면을 Gee Whiz의 금속 방풍 유리 위에 놓아둔 채 시속 200마일로 발사장소에서 7백피트 떨어진 곳으로 발사되는 등의 사고가 있었다.



    (그림 5. 고속으로 이동하면서 오스카 에잇볼은 Gee Whiz를 발사, 금속 방풍막을 통과하게 한다 -- 오스카가 머록 마른 호수로. 이 사고는 실제로 슬레드 트랙에 상당한 물리적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의로 낸 사고였다)

    1947년 12월. 35가지 테스트가 실시된 후 스테입 대령은 안전벨트를 매고 1인승 철제 슬레드에 탑승했다. 처음엔 로켓포 한개만 10G로 발사되었지만 스테입 대령은 서서히 참을성 있게 포의 수를 늘렸다. 테스트가 거듭될수록 위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사고로 인한 심한 상처로 고생도 했지만 그것이 스테입 대령의 굳은 결심을 바꾸지는 못했다. 몇 달만에 스테입 대령은 18G가 아닌, 35G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항공기 디자인과 조종사에 대한 제한사항 전체를 바꿀만한 놀랄만한 수치였다.

    당시 데이비드 힐은 원격측정법으로 테스트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이터 기어 담당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장비가 맞춤이나 실험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거의 모든 것이 경고도 보내지 않고 작동을 멎는 끝내주게 말 안듣는 진공 튜브와 아직 유아기적이었던 라디오 전자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시대였다.

    유명한 사고

    마침내 데이비드 힐은 그 유명한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지에 에드워드 머피라는 이름의 대령이 왔다. 머피는 G를 좀 더 정밀하게 측정하는데 사용된다는 센서 strain 게이지를 가져왔고... strain 게이지는 이렇게 해서 Gee Whiz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스테입 대령이 이 센서를 새로 장착한 슬레드에 올랐을 때 센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게이지가 반대방향으로 잘못 설치되어 수치가 0으로 나왔음이 밝혀졌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였다. 그러나 힐은 당시 머피가 발끈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머피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잘못된다."

    머피의 이 말은 부대 안에 널리 퍼졌다. 그 말은 모든 부대원들에게 전해졌다. 전설적인 머피의 법칙은 이렇게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법칙이 어떻게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데이비드 힐은 말한다. 존 스테입 대령은 에드워즈 기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그렇게 위험한 테스트를 하면서도 부대원 중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가 뭡니까?"

    스테입 대령은 --- 힐은 그것을 쇼맨십이라 표현한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는 무엇을 할 때 항상 머피의 법칙을 고려합니다. 테스트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죠. 덕분에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힐은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기억한다. 머피의 법칙은 스테입 대령이 해 왔던 실험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었다. 테스트 팀 멤버는 사고를 피하는 방법을 알아내려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테스트 팀은 "만일의 경우" 어떤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일을 잘못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언할 수 있다면, 그것을 막는 방법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숨을 구하는 법도.

    "어떤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한가지라도 존재하면 그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 스테입 대령이 한 말은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즉각 Gee Whiz에 관한 모든 기사에 머피의 법칙이 소개되었고, 그 때부터 머피의 법칙은 뉴턴의 법칙과 더불어 널리 인용되었다.

    힐은 머피의 법칙이 이렇게 유명해 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을 잘 해낼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일을 잘못되게 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망스럽게도 힐은 더 이상 자세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힐은 자신이 에드워드 머피에 관해 알지 못한다는 걸 인정했다. 힐은 스테입 대령, 드마르코, 홀로바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며, 머피도 분명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니콜라스라면 머피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있을거요." 힐이 말했다. "아직 그가 살아 있다면 말이요."

    머피의 법칙 1부
    [31] [30] [29] [28] [27] [26] [25] [23] [22] [21] [20]
    F.H.Z Server 접속자
    2014/12/25 11:57 PM
    DRILL 23명 / IRC 6명
    Errata
    BBUWOO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 "질문은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가"로 "시원한데 긁어줬다", 혹은 "너 잘났다"는 등의 극에서 극을 달리는 반응으로 리눅스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본인, OOPS.ORG를 통해 약 1만 8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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