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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5] 포트란을 탄생시킨 주역들


"태초에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이들은 물리학이나 엔지니어링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폴리에스테르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하얀 면양말, 도수높은 안경을 쓰고 기계어, 어셈블러, 포트란같은 지금은 잊혀진 고대의 컴퓨터언어를 코딩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초기 컴퓨팅의 주역을 담당했던 프로그래머들. 이제 70-80대에 접어들었을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뉴욕타임즈에 "IQ가 300이 넘지 않는 평민들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래밍 언어의 탄생"에 대해서 향수를 자아내는 기사가 실려 소개드립니다.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50년대 후반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을 탄생시킨 주역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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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의욕이 넘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우정으로 똘똘 뭉쳐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프로그래밍을 간단하게 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가까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이들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도 경험했다. 애초에 6개월로 잡은 제작 기간은 3년 가까이 연장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침내 이루어 내었고 1957년 그 노력의 결과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은 바로 포트란(Formula Translater)이었다. 포트란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은 IBM에서 이 팀을 이끌었던 존 베쿠스였다. 이 이름이 동료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철자를 거꾸로 한 단어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아무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포트란으로 결정되었다. 컴퓨터사에 있어 역사적인 발명인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오늘날 컴퓨터 과학자와 베테랑 프로그래머들은 포트란을 "최초로 배운 프로그래밍 언어지만 새로운 컴퓨터에 맞게 개발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에 밀려 잊혀진 언어"로 회상한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에 밀려 잊혀가고 있다는 사실이 포트란이 소프트웨어 세상을 진보시킨 공을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포트란 이후의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포트란이 구축해놓은 기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컴퓨터 역사가들은 포트란을 트랜지스터와 동등한 소프트웨어로 묘사한다. 1969년 벨 연구소에서 유닉스 운영체제를 개발한 케네스 톰슨은 초기에 프로그래밍을 한 사람들의 95퍼센트는 포트란이 없이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강력한 진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연구원인 제임스 그레이는 성서를 인용해 말한다. "태초에 포트란이 있었다."

포트란이 나오기 전, 컴퓨터 공학이나 과학 공식의 계산은 아주 힘든 작업이었다. 계산하는데만 몇주일이 소요되었고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고대의 성직자들만 신과 대화할 수 있었듯이 기계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성직자들 중에는 이단자도 더러 있게 마련이다. 포트란을 만든 멤버인 베쿠스는 이단자중 하나였다. "나는 기계와 대화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금문교가 보이는 그의 샌프란시스코의 자택에서 베쿠스는 50 여전전 일을 회상한다.

1953년 후반 베쿠스는 상사에게 프로그래밍을 더 좋은 방법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간단한 서신을 보냈다. 상사는 허락했다. 그래서 포트란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팀은10명으로 늘어났다.

당시의 컴퓨팅은 숫자와 수학과의 씨름이었다. 팀원은 수학으로 무장되어야 했다. 결정학자, 암호학자, 체스 마법사, 항공기 제조회사 직원, MIT 연구원, 베사 대학교에서 온 젊은 여성이 멤버였다.

그들은 한방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함께 일했다. 작업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왜냐면 밤만이 IBM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에서는 그들의 코드를 테스트하고 디버그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작업은 그들의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체스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겨울이면 밖에서 눈싸움도 했다. 그들은 서로를 알았다. 그들은 그들의 코드 그리고 그들이 작업하는 컴퓨터를 알고 있었다. "그당시 우리는 해커였다." 77세가 된 포트란 팀 멤버인 리처드 골드버그는 말한다.

팀의 성공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혼성 영어와 대수학을 조합시킨 것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냈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작업할때 사용하는 대수학 공식과 유사한 컴퓨팅 용어였다. 이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층 쉽게 해주었다. 프로그래머들은 약간의 교육만으로도 더이상 기계어에 문제가 발생할 때 컴퓨팅 사제단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 프로급 프로그래머들은 기계의 표준어인 1과 0의 바이너리로 작업했다. 어셈블리 언어도 있었다. 프로그래머들이 기억하기 좋은 약자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 메모리에 데이타 위치를 알려주는 숫자옆에 오는 명령어인 load 대신 LD로, multiply 대신 MPY로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고 나면 어셈블러 프로그램이 번역, 혹은 어셈블을 해주어 이 부호로 된 프로그래밍 지시를 바이너리로 바꾸어 주었다. 어셈블리 언어는 컴퓨터 기종에 맞춰졌다. 어셈블리 언어의 라인은 바이너리 코드의 라인과 대응되었다.

베쿠스씨는 팀의 목표를 아주 어려운 것으로 잡았다. 기계의 작동보다는 사용자가 부딪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위주로 제작하는 것이었다. 단 한줄의 포트란 코드로 기계에 대한 수많은 지시를 바이너리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했다. 포트란은 컴퓨터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인간 위주로 하는데 기여했다. 이것이 포트란이 최초의 high level 언어로 불리는 이유이다.

포트란의 또 하나의 위대한 성공은 아주 잘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포트란은 프로그래밍 엘리트들이 수작업으로 공들여 작성한 코드만큼이나 프로그램의 작동과 실행을 효과적으로 진행시켰다. 인간 프로그래머들의 run-time efficiency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IBM 팀은 포트란 컴파일러의 훌륭한 기능으로 이 장벽을 물리쳤다. 컴파일러는 프로그램에 대한 인간의 지시를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고쳐쓰는 것이다.

팀원이 늘어났다. 베쿠스는 프로그래밍 베테랑인 어빈 질러와 할란 헤릭을 영입했다. 베쿠스는 주변에서 추천을 받거나 스스로 똑똑해 보이고 프로그래밍의 요령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지적해 뽑았다. 다트마우스 대학에서 한학기동안 강의한 후 IBM에 입사원서를 낸 수학박사 리처드 골드버그는 "나는 컴퓨팅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는 3개월의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탁월함을 보여 베쿠스 팀으로 보내졌다.

로이스 하이브트는 베사 대학을 졸업한 후 팀에 합류했다.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그녀는 초봉 5,100 달러에 IBM에 입사했는데 이 연봉은 당시 벨연구소의 거의 두배나 되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내게 컴퓨터 프로그래밍하는 일이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건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그 정도의 연봉을 줄 정도라면 재미나고 도전해볼만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란이 발표된 것은 195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웨스턴 조이트 컴퓨터 컨퍼런스에서이다. IBM은 이 컨퍼런스에서 포트란 데모를 발표했다. IBM은 컨퍼런스가 열리기 직전 고객 몇명에게 제트기 날개를 디자인하는데 필요한 기류를 계산하는 것 같은 엄청난 작업도 컴퓨터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포트란이 프로그램을 컴파일하고 그 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트란은 작업량을 많이 줄여주는 것을 물론 계산을 이전보다 다섯배나 빠르게 해주었다. 또한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뉴스였다." 질러는 1957년 데모를 회상하며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주 특별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깨달았다."

오늘날 포트란 초기 개발자중 생존하는 사람은 6명이다. 7순에 접어든 이들은 컴퓨터 비즈니스와는 관계가 없지만 컴퓨터와의 인연을 계속하고 있다. 베쿠스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큰 50년대의 컴퓨터보다 휠씬 강력한 팜이 없이는 살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이어는 그의 전공인 결정학으로 되돌아갔다. 스토니 브룩에 있는 뉴욕 주립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그는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결정학은 컴퓨터화된 과학이 되어가고 있다며 빠른 컴퓨터와 영리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결정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 말한다.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연출하는 마법 덕분에 결정학은 새로운 삷을 맞이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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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Z Server 접속자
2014/04/19 04:16 PM
DRILL 23명 / IRC 6명
Errata
BBUWOO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 "질문은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가"로 "시원한데 긁어줬다", 혹은 "너 잘났다"는 등의 극에서 극을 달리는 반응으로 리눅스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본인, OOPS.ORG를 통해 약 1만 8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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