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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4부작 2편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2편)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는 머피에 법칙에 관한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얼음렌즈로 불 붙이기
호수나 샘에서 깨끗한 물을 퍼 온다. 물 속 가스가 제거되도록 약 10 분 간 끓인다. 그런 뒤 은박지 호일을 접어 약 5cm 정도 깊이의 접시를 만들어 물을 담고 천천히 얼린다. 아니면, 판매하 ...
머피의 법칙, 그 유래를 찾아서 4부작 1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머피의 법칙이 뭔지는 알면서도 막상 그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희귀한 연구 결과를 주로 싣는 핫에어 사이트에 "머피의 ...
[2003/01/10] 1960년대
"태초에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물론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이 단어는 1980 년 이후까지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진정한 프로그래머”는 전형적으로 공학이나 물리학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흰 양말과 폴리에스테르 셔츠, 넥타이 차림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어셈블리, 포트란, 지금은 잊혀진 고대 컴퓨터 언어로 코딩하며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해커문화의 선각자이자 역사시대 이전 찬양 받지 못한 주역들이었다." -/해킹의 역사 중에서

[1960]

최초의 해커, MIT에서 등장. 이들은 전자기차를 더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해 궤도, 스위치를 고치는 모형기차 동아리 멤버를 해커라 불렀다. 멤버 일부는 그들의 호기심을 새로운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스템을 연구 개발하는데 사용했다.

[1960]

MIT 해커들, 학내 TX-0 컴퓨터를 이용해 음악 연주, 체스 게임, 로봇의 팔을 제어하는 프로그램, 점등 시스템 및 컴퓨터를 사용하기 쉽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했다.

[1962.5]

MIT 해커들, 교내의 PDP-1 컴퓨터로 최초의 대화식 컴퓨터 게임 우주전쟁을 개발.

 

 

[1967]

MIT 해커들, 시분할 시스템을 개발해 PDP-6에 설치하다. 해커들이 개발한 시분할 시스템은 당시 통용되던 호환성 시분할 체계와 달랐다. 다른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이 좋았고, 무한한 확장이 가능했다. 그린 블러트를 비롯한 MIT 해커들은 거의 10년에 걸쳐 버그를 찾고 새로운 특성을 덧붙이고 수행속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여러개의 섹션으로 나누는 등 끝없는 작업을 계속했다.

 

[1967]

ARPA(Th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미국 컴퓨터 전문가들과 함께 IMPS(Interface Message Processors) 네트워크 개발.

 

[1968]

더글러스 잉글버트 박사, 최초의 마우스 발명

 

 

 

 

[1969.11.21]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컴퓨터와 수백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스탠포드 연구소 컴퓨터 연결 성공.

[1969]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 벨 연구소(훗날의 AT&T)에서 유닉스 운영체체 개발. 인류사상 가장 아름다운 해킹으로 불려진다.

 

[1969]

프레킹의 아버지로 불리는 USF의 수학과 학생 장님소년 Joe Engressia ('The Whistler' and 'Joybubbles'), 2600 헤르츠의 휘파람을 불면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쓸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다.


MIT 해커들

해커로 인증받을만한 사람들은 1960년대에 최초로 탄생했다. 초기 해커의 놀이터는 MIT의 인공지능연구소처럼 거대한 메인 프레임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들이었다.

해커, 혹은 해킹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1960년대 미국 MIT 대학에서이다. MIT 대학에는 컴퓨터가 있었다. 당시 컴퓨터는 냉장고보다도 컸다. 그 거대한 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엄청난 파워 케이블이 필요했다. 컴퓨터룸에는 엄청나게 큰 에어컨디션 장치가 되어 있어 냉장고 네 대 크기의 컴퓨터가 내뿜는 열을 식혔다.

이 비싼 장비는 한 번에 한 명의 사용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일부 큰 컴퓨터에는 오늘날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손바닥 만한 계산기의 파워에 맞먹는 파워가 있었다. 프로그래머는 펀치 카드(가로 세로로 구멍이 뚫린 직사각형의 카드)를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해 컴퓨터에게 무엇을 할지 알려주었다.

MIT 대학에는 컴퓨터를 아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폰프레킹 초기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MIT 학생들은 사물이 작동하는 원리에 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허가 받지 않고 컴퓨터에 접속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일한 기회는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잠기는 컴퓨터룸을 사용하려면 교수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컴퓨터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했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몰래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생들은 남들이 깊이 잠든 밤늦은 시간에 조를 짜서 컴퓨터실로 잠입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테스트 해보면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컴퓨터 작업을 좀더 빠르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 중에는 제조회사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았다.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은 훗날 소프트웨어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생들은 스스로를 해커라 불렀다. 해커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후 "타고난 호기심으로 사물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는 노력"을 해킹으로, 해킹을 하는 사람을 해커라 부르게 되었다.

같은 시기 미국 대학생들은 컴퓨터실에 갇혀있는 컴퓨터를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학교 당국은 마침내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컴퓨터를 학생에게 돌려주었다. 미국 대학생들은 학교 컴퓨터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닉스 - A Thing of a Beauty


최초의 가장 아름다운 해킹은 1969 년에 발생했다. 벨연구소의 싱크탱크에 소속된 두 직원이 컴퓨터를 작동하는 룰을 설정했다. 데니스 리치와 켄 톰슨이었다.

당시 벨 연구소는 다른 회사들과 합작으로 운영체체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AT&T에 근무하던 켄 톰슨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기술력 부족 및 수지타산 등의 문제로 이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프로젝트가 없어진 후 톰슨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PDP-7로의 우주여행" 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당시 PDP-7은 자체 운영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허니” 라는 운영체제가 있는 코드를 작성한 후 크로스 컴파일을 했다.

이 게임은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톰슨은 동료직원 데니스에게 더 좋은 컴퓨터를 구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상위 모델인 HPDP-11을 사주었다. 톰슨과 데니스는 이 게임의 프로그래밍을 좀더 편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는데 몰두했다. 그래서 마침내 1969년, 오늘날 유닉스라고 불리는 운영체체의 원형이 탄생했다.

유닉스는 일반적인 계산, 워드 프로세싱, 네트워킹이 가능한 소형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로 곧 표준 언어가 되었다. 해커들의 표현을 빌자면, 존 키츠의 시에 나오는“A Thing of Beauty” 였다.




인터넷의 탄생


1960년대말, 미국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당시 소련(러시아)의 핵폭탄 개발로 미국은 행여 소련이 핵폭탄으로 미국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에 대해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서 소련의 폭격을 받아 미국의 통신 기관이 파괴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군에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때문에 아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 고립된 부대는 자멸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핵전쟁으로 군사 시설이 파괴되어도 끄떡없는 통신 수단을 만들수 있을까가 미국의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고심 끝에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과학자들과 합동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 1969년 11월 21일 컴퓨터를 케이블로 이어 컴퓨터끼리 통신할 수 있는 전쟁용 비상 통신망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아르파넷 이라는 이름의 이 통신망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인터넷이다.

1969년 11월 21일 밤낮없는 강행군 끝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컴퓨터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스탠포드 연구소의 컴퓨터와 연결에 성공했다.

컴퓨터끼리 연결을 하면 이쪽에서 컴퓨터 키보드로 입력한 내용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볼 수 있고, 이쪽 컴퓨터에 보관된 파일을 저쪽 사람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군사 명령을 내릴 수 있음은 물론 기밀 정보도 교환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이후 1971년 지역 컴퓨터 20대를 연결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미국 내 통신망이 넓게 사용되었다. 이후 많은 나라들이 인터넷을 자기 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순식간에 지구촌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지금의 세계적인 규모의 인터넷이 탄생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사이버세계로의 담이 허물어진 70년대가 도래한다. 70년대의 해킹은 전화선으로 연결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탐색과 탐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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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Z Server 접속자
2014/07/31 10:27 PM
DRILL 23명 / IRC 6명
Errata
BBUWOO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 "질문은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가"로 "시원한데 긁어줬다", 혹은 "너 잘났다"는 등의 극에서 극을 달리는 반응으로 리눅스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본인, OOPS.ORG를 통해 약 1만 8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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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님 曰] 서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좋아하는 책이 판매순위 몇위인가를 체크하는 것도 지겹고, 다운로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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