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말씀하셨죠?"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묻는다.
"오, 그렇게 놀랄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난 자네가 함께 놀 컨설턴트가 온다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와 놀면 사용자를 괴롭히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안 그런가?"
내가?
사용자를 괴롭힌다고?
참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외부에서 보안 컨설턴트가 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언제 올건데요?"
"점심시간 지나고 나서"
그렇다. 그러면 시간은 충분하다.
"그리구, ... 그 컨설턴트를 누가 데리고 오자고 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재무이사가 그랬어. 재무이사는 우리회사 네트워크가 해킹에 무방비 상태라 재무관련 기밀 정보가 새어나가 회사 재정에 손해가 갈까 걱정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외부에서 컨설턴트를 데려오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네. 사실은 말이지, 이따가 올 컨설턴트를 추천한 사람은 바로 재무이사야."
아, 알겠다.
재무팀 놈들. 브리핑 한다는 핑게로 비싼 호텔에서 술이나 펑펑 마시고 막대한 회사돈을 청구하는 놈들. 난 안다. 단지, 오늘같은 기회를 기다려 아는척 하지 않은 뿐이다.
"컨설팅 비용은 얼마나 주는데요?"
보스가 말하는 돈의 액수는 한 전화번호를 연상시킨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나는 먼저 파이어월을 옮긴다. 30분이나 한시간이면 족하다. 그런 뒤 나는 최근 발견한 패스워드로 신원조회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다... 아, 내 추측이 맞았군... 좋아... 나는 CEO에게 익명의 이메일을 보낸다...
준비 완료! 녀석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선듯 들어오지 않고, 들어오라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젠장. 저녀석 분명 전직이 전기가 통하는 문 손잡이 수리공이었을 것이다. 녀석 뒤에서 보스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사이몬, 점심 잘 먹었나?" 보스가 신나라 떠든다. "자, 소개하겠네. 우리의 BOFH, 사이몬이네"
우리는 악수를 한다. 녀석은 BOFH가 무슨 뜻인지 묻지 않는다. 이걸로 봐서 녀석은 모르는 약어를 들으면 묻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하는 녀석임에 틀림없다.
"사이몬이 자네를 데리고 사무실 구경을 시켜줄 것이네" 보스가 말한다. "이따 오후까지 CEO와 내게 보고서 제출하는거 잊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구경 안 시켜주셔도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익숙한걸요"
그래, 너 잘났다...
녀석은 컴퓨터룸으로 들어간다. 나는 비명소리가 나길 기다린다. 그런데 조용하다. 아마도 고무로 만든 신을 신은 모양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모양이군.
녀석은 방화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녀석이 방화벽과 노는 동안엔 다른걸 만작거릴 수 없겠지. 나는 커피포트를 랜에 연결하고 앉아서 CCTV 모니터를 본다... 그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하느니라...
나는 리모트로 콘솔과 메인 허브를 떼어 놓는다. 알람이 고막을 울린다.
"이게 무슨 소리죠?" 녀석이 외친다.
나는 알람을 끈다.
"뭘 건드렸죠?" 난 소리친다.
"아니요!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요!" 녀석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니요, 아무것도''' 이런 말들은 대개 범죄를 자백할 때 써먹는 표준 수법이지... 나는 컴퓨터룸으로 들어가 수십개의 연결되지 않은 전선들을 손에 움켜쥔다. 이 전선들은 어떤 것에도 연결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나는 묻는다.
"아무것도 안 건드렸다고? 그럼 이건 뭐죠?" 나는 묻는다.
"뭐라고요?"
"이건 뭐냐고요!"
"글세요... 가서 리모트 브리지를 체크해 봐야겠군요"
5시다. 우리는 모두 CEO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나, 재무이사, CEO, 보스 그리고 녀석.
나는 말한다.
"... 재무팀 네트워크는 얼키고 설킨 케이블에, 이미 무용지물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6만달러나 하는 방화벽을 설치해 온통 취약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장비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저능아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CEO는 날 쳐다본다.
"그런가?"
"네, 사장님,"(존칭을 쓰는 것은 보통 도움이 된다) "단지 몇 가지만 예를 드는 거 같은데요, 우선 첫째, 이 사람은 케이블 배열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중요한 걸 발로 차서 알람이 울리는걸 들었잖습니까? 둘째, 저는 그 방화벽을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주문했나?"
모든 사람의 눈이 보스에게로 향한다. 보스는 중요한 약속을 깜빡 했다는걸 기억하고 미친듯이 서두르는 표정이 눈에 역력하다. 조금만 기다리시라. 당신도 아주 보내줄 테니...
"한가지 묻겠습니다.." 나는 CEO에게 말한다. "이 사람 오후에 사장님 사무실에 몇 시간 동안 있었습니까?"
"음, 회의 전엔 못 봤네. 왜?"
"왜냐면 현재 사용중인 방화벽은 저기 옷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무실 구석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따라서 보안을 체크하려면 이 방에 몇 시간 있어야 하는데, 이 친구가 사장님 방에 없었다니, 우리 보안상태를 어떻게 평가했겠습니까? 그러고도 우리 보안을 픽스했느니 어쩌고, 말같잖은 보고서를 작성해 컨설팅 비용을 내라고 하겠죠? 이건 사기입니다"
"컴퓨터룸에 있는 방화벽은 뭐요?"
걱정된 표정으로 녀석이 묻는다.
"그거요? 제 보스가 그 방화벽을 주문했을 때 난 그걸 사용하느니 차라리 그대로 놓아두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 컨설턴트가 오면 그게 형편없는 파이어월이라는 걸 지적할테고, 그러면 보스는 쓸모없는 고물 덩어리에 회사공금 6만달러를 날린 대가로 직장을 잃게 될거 아닙니까? 난 보스가 짤리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그를 도우려고 방화벽을 그냥 놓아둔 거요. 랜에 접속돼 있지 않았는데, 그걸 몰랐나요?"
그런 뒤 나는 CEO에게 몇 가지 추가 설명을 한다...
딩동!
CEO의 PC에서 메일 도착 알림 사운드가 들려온다. 고요한 사무실의 정적이 깨진다. 아까 내가 익명으로 보낸 메일이다. (이 메일이 분실되면 안되기 때문에 나는 이 메일을 제외한 CEO에게로 가는 모든 메일을 필터링해 /dev/null로 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내가 CEO에게 직접 말할 수 있겠는가. 재무이사가 저런 형편없는 컨설턴트를 고용한 이유가 사실은 그 컨설턴트가 이사의 매제였기 때문이라고... 난 못한다. 마음이 약해서 차마 그럴 수 없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창문을 내다본다. 짐을 든 재무이사가 주차장에서 보안요원의 수색을 받는 것이 보인다. 온라인상에서 출생, 사망, 결혼을 등록하는 건 참 재미난 일이다...